대학교 주변은 다 대학로, 신촌, 홍대앞 같을 줄 알았던 내가 병신이었다.
캠퍼스는 다 연대, 고대 같을 줄 알았던 내가 등신이었다.
수능 보고 성대 지원할 때만해도 몰랐다.
자연과학캠퍼스란게 따로 있는지. 그리고 그게 수원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거길 다니게 될지.
2004년 1월, 친구랑 처음 내가 다니게 될 학교를 둘러보러 왔을 때, 그 때의 충격과 공포를 잊지 못한다.
방학이라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던 캠퍼스에는
지난 학기에 누군가 붙여놨던 대자보가 한 쪽 모서리의 접착이 떨어진 상태로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느낌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을 직접 경험하게 해주었다.
학교 앞에는 당구장, 술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난
'아 시바 나 공부 잘 했는데 이게 뭐야'라는 생각
'재수도 했는데 삼수 그까이꺼'라는 생각
짜증이 확 났다.
사랑과 낭만이라는 단어와 어울릴 줄 알았던 캠퍼스라는 말은 구라즐이었고,
창피함과 촌스러움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다.
행정구역상 율전동에 위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짧게 '율전'이라고 부른다.
동네 이름마저 촌스럽다.
그래도 입학하던 2004년에 비해 졸업하던 2011년의 캠퍼스와 학교 주변은 상당히 많이 바뀌어서,
그냥 다닐만 하다는 느낌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아마 8년여 동안 이런 환경에 적응해서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고,
지금 들어오는 12학번들은 1학년때의 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암튼 이른바 메이커, 브랜드 이런 것들과 거리가 멀었던 학교 앞에 할리스라니..문명이 들어왔다.
이곳엔 공학수치해석 시험을 보고는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동기들과 함께 순대국을 먹었던 순대국집이 있었다.
나는 술집 주인 아줌마들한테 이모라고 부르는 걸 별로 안좋아한다.
그 사람이 내 이모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그리 친근감을 느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근데 먹거리 고을 주인 아줌마한테는 이모라는 말이 수줍게 튀어나온다.
닭도리탕에 밥만 먹고 나가려고하니깐 술 안시켰다고 혼난 기억이 있다.
촌스러운 율전에 어울리지 않게 코페아 커피는 참 맛있다. 이 날도 간 김에 오랜만에 한잔 마셔보았다.
투썸 개객끼야.
솔직히 좀 더러운데 맛있어서 가게 되는 한두야.
여름에 여기서 밥먹고 나오면 땀이 한바가지다.
줄여서 믿분
차는 정문으로 사람은 쪽문으로.
기숙사에 붙어있는 밍기뉴 매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제제가 나무에게 붙인 이름이 밍기뉴라고 한다.
앉아서 한가하게 노닥거렸던 SY 까페.
성대 기숙사의 이름은 仁, 義, 禮, 志, 信 이다.
여자 기숙사인 禮관 앞엔 항상 여자친구를 기다리던 주영이가 담배를 피며 서 있었다.
베프였던 우정이와의 접선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과가 위치한 2공대. 뭔 대학교 건물이 고등학교 건물이랑 똑같이 생겼다.
사진을 찍다가 지도교수님이셨던 손미애 교수님을 마주쳤는데 체육대회 한다고 연락도 안줬다며 서운해하셨다.
수업에 늦은 날엔 이 복도가 너무 길었다.
기술예측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나보다.
교수님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빨리 은퇴하시는게 나을 것 같다. 이 랩실은 발전이 없다.
복도를 지나가다보니 OR2 시험 점수가 붙어있었다. 역시 이호우 교수님 시험은 - 점수가 있어야 제 맛.
갤러리같은 소리하네. 복도에 아무것도 없드만
우리과 전공 강의실. 그다지 첨단은 아니다.
방학동안에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절단기로 잘라냈던 내 자물쇠.
새로 사온 자물쇠의 비밀번호는 100 이었는데 다신 까먹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담겨있다.
우리과의 취업률은 매우 조으다.
비오는 날은 굳이 밖으로 안다니고 구름다리를 통해 1공대로 넘어간다.
엔유 앞으로 와~
엔유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2공대든 도서관이든 애들 불러내서 놀기가 수월하다.
수업이 끝나고 이 쪽 문을 통해 나올 때 쯤 오늘은 어디가서 뭐 먹을지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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