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현충일을 맞이하여 현충원에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엄마의 마늘을 까라는 명령에 집에서 하루 종일 마늘을 깠다.
새로 찍은 사진이 없으면 찍어 놓은 사진으로 버티는거다.
현충일이면 TV에서 구닌 영화를 방영하듯이 나도 오늘은 내 군시절 사진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편한 군생활을 위해 공군을 택했다.
1호선 수원역에서 한 정거장 더 밑으로 가면 세류역이 나오는데 그 곳이 바로
내가 군복무를 한 제 10 전투 비행단이다. 집에서 전철타고 한시간 반이면 부대 바로 앞에 떨궈주기 때문에
입대전부터 이 부대로 오길 원했었는데
빌어먹을 훈련소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수원이 '공군 군기의 상징' 이랜다.
어쨌든 내 훈련 성적이 나쁘지 않았는지 1지망이었던 수원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부대 내 스포츠센터 관리병이 되었다.
정식 명칭은 조종사 생환 훈련장으로 조종사들이 극한상황 시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체력을 기르도록 운동시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얘기를 군필자들에게 해주면 대부분 부러워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땡보였다고 맹비난을 한다.
추위와 배고픔을 모른건 사실이지만,
여기도 이 곳 근무자들만의 빡셈이 있다.
9시가 되면 걸레를 빨아 정해진 법칙으로 접은 뒤, 2층에 있는 헬스장으로 뛰어 올라가
헬스장의 모든 기구들을 훔치는 것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워낙 빨리 해야하다보니 놓치는 곳이 종종 나오는데 가끔 고참들이 검사를 하다가 그런데가 발견되면,
난 억울하게도 그날 열심히 청소 안하고 쳐 놀면서 대충한게 된다. 아직도 억울하다.
군생활 초반에 웃겼던건 어떤 일이든 고참들이 해오던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마치 큰 죄라도 진 듯 개같이 욕을 쳐먹는다는 것이다. 이 청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직도 청소 순서만은 제대로 기억난다.
6월부터 10월초까지는 수영장을 개장한다.
진짜 사람들이 미친듯이 온다. 특히 주말엔 너무 바빠서 끝날때까지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그 때 알았다. 나는 서비스업이랑 안 맞다.
그나마 수영장 놀러오던 초딩들한테 먹을거 사주면서 놀리고 놀았던 게 낙이라면 낙.
볼링장 시설은 웬만한 사설 볼링장 보다 좋다. 때문에 관리를 빡세게 해줘야한다.
기름때 먹은 먼지를 닦아내고, 다시 기름칠하고, 볼링 기계의 나사를 조인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는 건 모든 군대의 공통업무이다.
전투복은 훈련할 때나 입는거고, 평소엔 저런 옷을 입고 다닌다.
상병 때 잠시 지냈던 2내무실은 진짜 겁나 재미없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동기들끼리 내무실을 쓰게 되었다. 재밌는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배 없던 시절.
열창하는 원똘추.
못난 동기들.
창피한 동기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원똘추와 손똘추.
제대 전에 휴가 맞춰서 만난 훈련소 때 동기들.
스포츠센터 4인방.
제대 전날 제대회식하고 나서 후임들과 떼 샷.
7명의 동기들 중엔 취사병 3명, 장교숙소 관리병 1명, 행정병 1명, 운전병 1명, 그리고 스포츠센터 관리병 1명.
병장이었던 9개월동안 다같이 운동하고, 다같이 맛있는거 해먹고, 다같이 숙소가서 쉬고,
다같이 드라이브하고, 다같이 위닝하고 그랬는데 제대하던 날 뒤도 안돌아보고 일곱방향으로 흩어졌다.
스무살때까지만해도 막연하게 나는 어떻게든 군대를 안갈수 있는 방법있을것만 같았는데
결국 이런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해결했다.